기/획/칼/럼 [전문가에게 듣다] “텍사스 정전 대란 그 원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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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만에 찾아온 초강력 한파가 지난주 텍사스를 온통 꽁꽁 열려버렸다. 전기를 끊겼고 수도는 얼어붙었다. ‘깜깜이 지옥’이란 말이 실감나는 시간이었다.  아까운 인명마저 앗아간 이번 단전사태의 원인을 전문가 칼럼을 통해 짚어 본다.  <KTN 보도 편집국> 

 

먼저 이번 ‘북극한파’를 꿋꿋이 이겨낸 우리 한인동포들께 격려와 존경의 뜻을 전하면서 몇 자 적어본다. 지난주 텍사스를 급습한 영하 20도의 강추위와 이로 인한 대규모 정전사태는 전세계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뉴스가 나가자 한국의 친지들로부터 안부 문의가 폭주했다. 주변 지인들로부터도 단전단수 여부를 묻는 전화도 꽤나 받았다. 필자의 경우, 인터넷만 며칠 끊기는 피해에 그쳤지만 많은 동포들이 전기와 물이 없는 불편한 생활을 해야 했다. 이런 와중에 피해동포들을 직장동료나 같은 교인들이 앞다퉈 챙겨줬다는 미담들이 속속 들려온다. ‘물개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아무리 80여년만의 초강력 한파라지만 ‘기름과 에너지의 땅’ 텍사스에서 이런 ‘후진국형’ 난리를 겪다니… 도대체 왜 이런 사상 최악의 단전사태가 발생했고,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할까? 휴스턴 크로니클 등 텍사스 현지 언론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전력감독기구 ERCOT를 ‘비난의 도마’ 위에 올리고 있다. 텍사스로 이주해 오는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도 ERCOT이름에서 신뢰를 뜻하는 ‘R’자를 빼야 한다고 비아냥 트윗을 날렸다.

 

ERCOT는 Electric Reliability Council of Texas의 약칭으로 한국의 전력거래소(KPX)와 유사한 기능을 하고 있는 비영리 기구이다. ERCOT가 하는 일은 일부 타주 인접지역을 제외한 텍사스 90% 지역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것이다. 총 650개에 달하는 각종 발전소와 ONCOR나 AEP(American Electric Power) 같은 전력망 사업자들을 연결시켜 전력량을 컨트롤한다.  ERCOT 관할지역에는 대략 2600만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렇게 중차대한 일을 하는 ERCOT가 왜 이번 사태로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것일까? 먼저 크로니클 신문의 에너지 담당 전문기자 크리스 탐린슨의 분석이다. 그는 “이번 강추위 엄습에도 불구하고 발전소 650기 가운데 195기가 가동되지 않아 전력공급에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렇다면 약 30%에 달하는 발전소가 가동되지 못한 이유가 뭘까?  텍사스의 전력공급 체계는 무더운 여름에만 최적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겨울철 전력사용량 상황은 대충 뒷전이다. 

 

이와 관련, 탐린슨 기자는 발전사업자들의 ‘장사속’을 지적했다. 말하자면, 텍사스 발전사업자들이 돈이 되는 여름철에만 장사하고 돈 안 되는 겨울철 장사는 ‘나 몰라라’ 해왔다는 것이다. 일종의 ‘모럴 해저드’이다. 이를 제대로 지휘감독하지 못했기 때문에 ECORT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것이다. 

텍사스 각지 언론 보도내용을 종합해보면 ECORT의 직무유기는 명백한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한인신문 KTN도 지난 호에서 ERCOT가 “올 겨울을 대비해 발전소 현장점검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작년 9월 발표한 ECORT의 동절기(12월~2월) 전력수급 예상 보고서를 보면 왜 사전 현장점검을 하지 않았는지 설명된다. “이번 겨울 아무리 최악의 시나리오가 닥쳐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게 ECORT의 전망이었다. 그러나 그 예측은 빗나갔고, 그 피해는 몽땅 우리가 뒤집어 썼다. 

 

더구나 ERCOT의 최근 행적을 추적해보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살인한파가 코앞에 닥친 지난 2월9일 ERCOT 임원진들은 화상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로 나눈 대화내용이 주로 슈퍼볼 경기 관련 잡담이었고, 정작 한파 대비책은 딱 40초 정도만 거론되었다고 한다. 딱 40초!  이번 사태가 안일한 근무태도로 인한 ‘인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ERCOT의 안일대응만을 탓하기에 앞서 태생적 결함도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ERCOT는 1970년에 공식 출범했지만 조직의 필요성은 이미 2차대전 때부터 제기되었다고 한다. 

 

텍사스 전력사업자들은 당시 걸프만 지역의 군수산업기지에 막대한 전력을 공급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주들과 전력을 나눠 쓰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런 관행은 연방법(Federal Power Act)에 저촉되는 것이었고, 텍사스 전력사업자들은 어떻게든 연방정부의 규제를 피하려 노력해 왔다. 이 같은 노력의 산물이 바로 ERCOT이다. 

 

ERCOT의 출범으로 텍사스는 전력과 관련된 연방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 대신 다른 주에서 전기를 빌려올 수 없다. 

위급 상황시 다른 주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손발을 묶어버린 셈이다. 이번 단전사태가 바로 이 같은 맹점의 결과일 수도 있다. 

이유 여하를 떠나 37명의 아까운 인명을 앗아간 이번 정전사태의 책임 소재는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또한 해결책을 찾아 반드시 재발을 막아야 한다. 지난 2011년 2월초 텍사스는 이미 ‘롤링 블랙아웃’을 경험했다. 당시에도 피해가 만만치 않았다. 한 지역의 부족한 전력을 메우기 위해 다른 지역을 강제로 정전시켜야 했다. 정확히 10년 뒤 똑 같은 일이 일어났다. 누군가는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똑같은 실수가 되풀이 될 수 있다.  

 

솔라에너지 컨설턴트 김영걸 

(전 신재생에너지소재개발지원센터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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