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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연착륙의 문턱에서 — 아무도 섣불리 승리를 외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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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가 오랫동안 꿈꿔온 '연착륙'의 문턱에 서 있다. 인플레이션은 잦아들고, 고용 시장은 버티고 있으며, 성장세도 탄탄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위기가 좋을수록 아무도 입을 열려 하지 않는다. 마치 야구 경기에서 노히트 행진 중인 투수에게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것처럼 — 입 밖에 내는 순간 마법이 깨질까 봐.
불가능하다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고 있다
4년 전만 해도 경제학자 대부분은 고개를 저었다. "경기침체 없이 인플레이션을 잡는다? 그건 동화 속 이야기"라고. 실제로 2022년 미 연준이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시작했을 때, 시장은 실업률 급등과 경기 침체를 거의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였다. 그런데 2026년 2월, 숫자들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1월 소비자물가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변동성이 큰 식품·에너지를 제외한 핵심 물가는 전년 대비 2.5% 상승에 그쳤다. 2021년 팬데믹발 인플레이션이 시작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3년간 연초마다 물가를 끌어올렸던 '연초 효과'도 올해는 한층 약했다. 같은 주에 발표된 고용 통계에서는 실업률이 4.3%로 소폭 하락하며 13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
수치만 놓고 보면 교과서적인 연착륙이다.
그럼에도 안전벨트는 아직 풀지 마라
하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아직 이르다."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총재 애나 폴슨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연착륙 성공을 선언할 생각이 없다. 목표는 2% 물가다. 아직 일을 끝내지 못했다." 연준이 선호하는 PCE 물가지수 기준으로 핵심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3%에 육박하며 목표치를 크게 웃돈다.
고용 시장 역시 겉보기보다 취약하다는 신호가 있다. 연간 수정치를 보면 2025년 한 해 동안 월평균 1만 5천 개의 일자리만 늘었는데, 이는 전후 역사상 경기침체기를 제외하고는 손에 꼽힐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일자리 증가도 의료·교육 분야에 편중되어 있다. 그나마 실업률이 안정적인 것은 기업들이 채용을 줄인 만큼 해고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미묘한 균형은 예상치 못한 충격 하나에 무너질 수 있다.
두 가지 상반된 리스크
흥미롭게도 전문가들의 가장 큰 우려는 서로 정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바클레이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크 지아노니는 오히려 경제가 너무 건강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가계 전반의 자산 가치가 올랐다. 소비 여력이 충분하다는 뜻인데, 이게 인플레이션을 2%대로 끌어내리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의 전망은 올해 말 물가 2.8%, 실업률 4.0%이다.
반면 페이든&라이젤의 제프리 클리블랜드는 노동 시장 악화를 더 우려한다. 인공지능 붐의 수혜와 피해가 기업별로 극명하게 갈리면서 주가가 떨어진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대규모 감원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전망은 물가 2.1%, 실업률 소폭 상승.
같은 데이터를 보고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리는 두 전문가. 그것이 지금 미국 경제의 현주소다.
관세라는 복병
1월 물가 보고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면 아래 복병이 숨어 있다. 그동안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주범이었던 주거 비용은 드디어 의미 있게 안정됐다. 하지만 주거를 제외한 서비스 물가는 여전히 강했고, 관세 영향을 받는 상품 가격은 오히려 가속화됐다. 중고차를 제외한 핵심 상품 가격은 연율 기준 4.4% 상승으로,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4월 관세 충격을 스스로 흡수해왔던 자동차 제조사들이 이제 그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역사는 판정을 미루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임기는 오는 5월 끝난다. 40년 만의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물려받아, 정치적 압박 속에서도 원칙을 지키며 경제를 이끌어온 그가 퇴임을 앞두고 있다. 연착륙이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와 있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의 후임으로 거론되는 케빈 워시가 이 성과를 공고히 할지, 아니면 더 공격적인 방향으로 나아갈지도 미지수다.
경제는 지금, 착지 직전의 비행기처럼 활주로 위를 달리고 있다. 바퀴가 땅위에 멈출 때까지 — 아무도 박수를 치려 하지 않는다.
리빙트렌드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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