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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세상에는 집이 있는 사람과 집이 없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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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EWS
문화 댓글 0건 조회 90회 작성일 25-04-1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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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 시인 / 수필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리고 중얼거린다.

“일어나기 싫다. 그냥 이대로… 잠들었으면.”

늙어가는 이 나이에 학교 가기 싫어 꾀를 부리는 아이처럼 아직도 월요일 아침마다 이러고 있으니, 나도 참 이상한 아줌마다. 평생을 올빼미처럼 밤에 더 깨어 있는 사람으로 살아왔으니 당연하다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와중에, 반가운 전화가 걸려 왔다.


  “꿈에 네가 나왔어.”

한국에 있는 친구였다. 카톡으로만 안부를 주고받던 친구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온 건,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그 한마디에, 오늘 하루가 달라졌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다. 사는 게 별거인가.

  “잘 지내?” 그 따뜻한 물음 하나에, 하루가 포근해진다.


  요즘 나의 출, 퇴근길은 예전처럼 가볍지만은 않다. 작년 초부터였을까. 가게 앞 굴다리 밑에 있던 홈리스들이 어느새 우리 가게 앞까지 올라왔다. 32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켜왔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처음엔 그냥,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인 줄 알았다. 매일 나타나는 흑인 청년 하나가 눈에 띄었는데, 알고 보니 옆 슈퍼마켓 벽에 있는 전기 아웃렛 때문이었다. 그 아웃렛을 쓰려고 머물던 청년. 그가 시초였다. 그가 머무르던 자리에 둘, 셋. 어느새 예닐곱 명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침이면 회의라도 하는지 큰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다 사라지고, 해가 지면 짐을 싸 들고 하나둘 다시 나타났다. 그 모습이 꼭, 어딘가에 다녀온 집주인들 같았다.


어느 비 오는 저녁, 그날도 늦게까지 일을 한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문에 기대고 앉아 있는 그들을 보고 나는 도무지 문을 열 수 없었다. 그들도 비를 피할 공간이 필요했겠지만, 막상 문 앞까지 기대앉아 있으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결국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모르니 아이와 함께 와달라고 부탁했다. 둘이 오는 모습을 보자 다행히 그들은 조용히 일어나 자리를 비켜주었다.


  “왜 하필 우리 가게 앞일까…”

투덜거리는 나에게 남편은 웃으며 말했다.

  “여기 터가 좋긴 좋은가 보다. 명당인가 봐.”


  그 말에 웃음이 나긴 했지만, 손님들 걱정도 이어졌다.

“문을 닫고 장사하세요.”

“가게 앞에 사람이 누워 있어서 그냥 돌아갔어요.”

가끔은 경찰을 부르는 손님도 있었다. 위협적인 행동은 없었지만, 바로 앞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안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아침. 도착하자마자 나는 멈춰 섰다. 문 앞엔 밤새 누군가 토해놓고 간 흔적과, 구석에 던져진 보따리들이 있었다. 속이 울컥 끓어올랐다. 참고 참았지만, 이제는 너무했다 싶었다. 나는 빌딩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 상태에선 도저히 장사를 못 하겠어요. 손님들도 불안해하고, 우리도 지쳐가요. 우선 당장 사람을 보내서 누군가가 쏟아 놓고 간 토사물부터 치워 주세요. 그리고 전기 아웃렛부터 막고, CCTV도 설치해 주세요. 누군가는 조치를 취해야 하잖아요.”


  말을 쏟아내고 나니 화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리고 며칠 뒤, 전기 아웃렛에는 자물쇠가 채워졌고, 홈리스들도 자리를 옮겨갔다. 이젠 가끔 한두 명이 머무를 뿐, 예전처럼 문 앞을 진 치진 않는다. 경비도 생긴 것 같고, 주변도 조금씩 예전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며칠 전에는 시청에서 전화가 왔다. 우리 상가를 포함해, 사거리 상가 주민들에게 민원이 많이 들어왔다고 했다. 대책 회의가 열린다며 참석 여부를 물었고, 나는 참석은 어렵지만 내 이야기를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차분히 설명했다.

누군가의 기록이, 작은 변화의 시작이 되길 바라면서.

가끔, 이태 전에 다녀온 엘에이의 한인타운이 떠오른다. 거리 곳곳에 누워 있던 홈리스들. 그땐 남의 일 같지 않게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우리 동네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여기서도 일상이 된 풍경이다. 

처음 몇 명을 봤을 땐 마음이 아팠고, 특히 추운 날엔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한여름 땡볕에 누워있는 걸 보면 물이라도 건넸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내가 지켜온 이 작은 터전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들에게는 손잡아 일으켜 줄 사람이 없었나 보다고. 어렵게 일어나 서면 흙먼지 탁탁 털어주며 등 쓸어주는 사람이 없었나 보다고.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이 소리를 낸다는 말은 맞는 말이 아니었나 보다고. 어떤 것도, 어떤 이도 제 몫을 해준 적이 없었나 보다고. 찾아갈 한마디 말이, 따뜻한 집이 되어줄 한 사람도 없었나 보다고. 땅이 너무 거칠어 잔뿌리조차 내릴 수 없었나 보다고.


  그래서 오늘도 조심스럽게, 내 공간을 지키며, 그들의 존재도 잊지 않으려 애쓴다.

세상에는, 정말 집이 있는 사람과 집이 없는 사람, 그 둘 뿐인지도 모르겠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겨우 따뜻함 하나로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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