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칼럼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가족사진, 다시 쓰는 역사

페이지 정보

작성자 NEWS
문화 댓글 0건 조회 562회 작성일 25-01-31 11:34

본문

김미희 시인 / 수필가


“이 사진이 좋아? 아니면 이게 나아?” 남편은 컴퓨터 화면을 넘기며 하나하나 사진을 클릭해 보여줍니다. 맘에 드는 걸 고르라며 자꾸 보채는 모습이 참 정겹습니다. 오래전부터 파더스 데이를 가족사진을 찍는 날로 정해두었던 남편이지만, 언제부턴가 그 약속이 흐지부지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내 생일날 가족사진을 찍자”고 한 것입니다. 파더스 데이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별다른 준비 없이 찍은 사진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몇 장 건질 만한 사진이 있어 노력한 보람은 있었습니다.


사진을 고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얼굴에 시선이 머뭅니다. “내 눈이 너무 처졌어. 조금만 올려주면 안 될까?” 남편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이것저것 보정해달라고 조르는 내 모습이 마치 세월과 작은 실랑이를 벌이는 듯합니다. 세월이 흘러 내 얼굴에 남긴 흔적들은 자연스럽다고 하기엔 조금 서운하고, 그렇다고 모두 지우기엔 나를 잃어버리는 것만 같아 망설여집니다. “나중에 리언이가 이 사진을 보면 할머니가 예쁜 게 낫지 않을까?” 가벼운 농담으로 추임새를 넣으며 남편을 슬쩍 설득해 봅니다. 코를 세우거나 턱을 깎는 건 무리더라도, 조금 덜 측은해 보이도록 눈가를 정리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진을 보고 있자니, 문득 지나온 인생도 보정이 필요할 만큼 아쉬운 순간들이 많았나 싶어 등줄기에 식은땀이 납니다. 후회스러운 결정, 놓쳐버린 기회, 더 잘할 수 있었던 일들…. 하지만 내 곁에서 건강하게 자라며 평범한 행복을 누리는 아이들을 보면 그 모든 아쉬움도 희미해집니다. 아마 그래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간직하는가 봅니다. 살아온 순간들을 붙잡아, 그것이 좋았든 아팠든 따뜻한 기억으로 남길 수 있으니까요.


  이번 사진은 우리 가족에게 더 특별합니다. 새 생명이 태어나고 처음으로 찍는 가족사진이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이제 갓 스무 달이 된 아이는 트라이팟 위에서 깜빡이는 카메라 렌즈를 한 번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마치 네 명이던 가족이 여섯이 되어 찍는 첫 가족사진이라는 걸 알기라도 하듯이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면 닮은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함께 웃으며 같은 곳을 바라보는 그 순간만큼은 영락없는 가족입니다. 문득 깨닫습니다. 행복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런 소소한 순간 속에 있다는 것을.


“최고의 사진은 가족사진이다.” 남편이 늘 하는 말입니다.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면 남편은 꼭 가족사진이 있는가를 확인합니다. 가족사진은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는 그 가정의 작은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사진은 마치 나이테처럼,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새기고, 부모가 세월을 겪어내는 흔적을 기록합니다. 기쁨과 슬픔, 설렘과 아쉬움이 켜켜이 쌓여 하나의 역사로 남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의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이 함께 써 내려가는 이야기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가치가 깊어지는 보물입니다. 물려줄 큰 재산은 없지만, 함께한 시간만큼은 유산으로 남겨주고 싶다는 남편의 마음이 새삼 이해됩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아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촛불을 끄고 생일 케이크를 자릅니다. 생전 처음 맛보는 케이크를 신기해하며 두 번이나 더 먹어보더니, 입맛에 맞지 않는지 작은 얼굴을 찡그립니다. 그러다 사레가 들려 얼굴이 빨개지도록 기침을 하더니, 어느새 하품을 시작합니다. 잘 시간이 되었나 봅니다. 가족들은 그 모습을 보며 소리 내어 웃습니다. 아이는 떠날 채비를 하는 기색을 눈치채고, 신발을 신더니 한 명씩 꼭 안아줍니다. 그리고 배꼽인사를 하며 오늘의 감동을 남긴 채 떠납니다. 오늘의 이 순간이, 첫 번째 가족사진 속에 영원히 남겨질 것입니다.


  벌써 새해 첫 달이 지나갑니다. 어느새 설날이 되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들이 오고, 때로는 그 선택들이 버거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 속 오늘처럼 수수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주어진 삶에 얽매이기보다는, 그 안에서 자기만의 색과 결을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불신과 의심이 가득한 세상에서도, 우리 가족만큼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만으로 정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사진 속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언젠가 아이들이 펼쳐볼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문가칼럼 목록
    공학박사 박우람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미국 Johns Hopkins 대학 기계공학 박사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재미한인과학기술다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지구 밖 환경은 생명체에게 매우 가혹하다. 중력이 없어 걸어 다닐 수도 없고 공기가 없어 숨을 쉴 수도 없다…
    문화 2025-12-28 
     박인애 (시인, 수필가)Willow Bend Mall은 우리 집에서 차로 5분이면 갈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다. 혼자서 운전해 갈 수 있는 유일한 쇼핑몰이기도 하다. 우리가 캐롤톤에 처음 이사 왔을 때만 해도 그 몰에는 Macy’s, Dillard's, Neiman …
    문화 2025-12-28 
    서윤교 CPA미국공인회계사 / 텍사스주 공인 / 한인 비즈니스 및 해외소득 전문 세무컨설팅이메일: [email protected]  2025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한 해 동안의 세법 변화와 경제 흐름을 돌아보고 다가오는 세금보고 시즌을 준비하게 된…
    세무회계 2025-12-28 
     오종찬(작곡가, 달라스 한국문화원장)겨울의 음악 여행, 흐렸던 하늘 틈 사이로 살며시 비쳐오는 아침햇살의 눈부신 이야기는 보석처럼 빛나는 우리 인생의 좋은 글들을 모아 아름다운 선율로 다듬어져 차갑던 가슴을 어루만져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겨울 음악 여행을 만들어 갑니…
    문화 2025-12-28 
    이광익 (Kevin Lee Company 대표)애완견과 집보험 뉴질랜드의 한 어린이 병원에서는 입원 중인 환자들에게 애완동물의 문병도 받을 수 있게 했다고 한다.이 병원은 불치병 등으로 장기 입원 중인 어린이 환자들에게 고양이나 강아지 등의 문병을 받을 수 있는 접견실…
    보험 2025-12-28 
    조나단 김(Johnathan Kim) -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 졸업- 現 핀테크 기업 실리콘밸리   전략운영 이사난자 냉동이 말해주는 시대의 변화미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인생 설계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일, 결혼,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전 세대와는 …
    교육상담 2025-12-28 
    김재일 (Jay Kim) 대표현 텍사스 교육청 (TEA) 컨설팅전직 미국 교육부 (U.S Department of Education) 컨설팅 전직 텍사스 공립학교 교장“성적은 괜찮은데, 자기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는 않아요.”“앞으로 무엇을 더 배우고 싶은지,…
    교육상담 2025-12-19 
    고대진 작가◈ 제주 출신◈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에세이집 <순대와 …
    문화 2025-12-19 
    엑셀 카이로프로틱김창훈 원장 Dr. Chang H. KimChiropractor | Excel Chiropracticphone: 469-248-0012email: [email protected] MacArthur Blvd suite 103, Le…
    건강의학 2025-12-19 
    박운서 CPA는 회계 / 세무전문가이고 관련한 질의는 214-366-3413으로 가능하다.Email : [email protected] Old Denton Rd. #508Carrollton, TX 75007어느덧 12월 마지막장 달력을 남기고, 올해도 이제 고…
    세무회계 2025-12-19 
     오종찬(작곡가, 달라스 한국문화원장) 오후에 진한 구름 사이로 햇빛이 잠시 보이더니 저녁을 먹고 난 후 밤새 가을비가 내립니다. 버팔로 내셔널 리버(Buffalo National River) 강가를 끼고 조그만 언덕 위에 설치한 텐트를 밤새 두드리는 가을비 소리는 마…
    문화 2025-12-19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요즘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다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이야기>를 얼마전 네플렉스에서 본 적이 있다. 제목부터 심상찮은 이 드라마는 김부장이라는 대한민국중년 남성의 성공 키워드를 서울 자가 아파트와 대기업 부장으로 꼽는다…
    문화 2025-12-12 
    크리스틴 손, 의료인 양성 직업학교, DMS Care Training Center 원장(www.dmscaretraining.com / 469-605-6035)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 되면 한해동안 DMS Care Training Center에서 공부하신 많은 학생…
    교육상담 2025-12-12 
    에밀리 홍 원장결과가 말해주는 명문대 입시 전문 버클리 아카데미 원장 www.Berkeley2Academy.com 문의 : [email protected]상위권 대학 입시에서는 단순히 높은 내신이나 시험 점수만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이 대학들은 뛰어…
    교육상담 2025-12-12 
    서윤교 CPA미국공인회계사 / 텍사스주 공인 / 한인 비즈니스 및 해외소득 전문 세무컨설팅이메일: [email protected]년은 트럼프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관세나 이민법등 다른분야도 크게 달라졌고 미국 세법또한 크게 변곡점을 맞는 시기다.  2025년 말로 T…
    세무회계 2025-12-12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