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추석 ‘단상’

페이지 정보

작성자 NEWS
문화 댓글 0건 조회 167회 작성일 24-09-27 09:36

본문

들판에 하얀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하늘이 유난히 푸르고 멀게 느껴지며, 여름내 피고 지던 야생 해바라기가 시들어갈 즈음이면 추석무렵이다. 미국 와서 강산이 몇 번 변할 만큼 살았는데도 난 아직도 한국의 절기를 고집한다. 예전에는 쩔쩔끓는 날씨에 ‘처서’나 ‘백로’를 갖다 붙이면 참 안 어울린다 싶었는데, 요즘은 기후 이상으로 한국날씨가 여기와 별 다르지 않아서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다. 게다가 ‘추석 폭염’ 때문인지,  부모님댁보다는  풀장이나 시원한  곳을 찾아 떠나는 추석 연휴객들도 많다 하니 고국의 추석풍경도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 같은 재외동포의 경우, 명절의 의미는 남다르다. 차례 제사상을 차리거나 친지를 방문하는 등 한국에서의 명절 지내기와는 양상이 다르지만, 나름 한민족으로서 정체성을 확인하고  우리의 전통을 이어 나간다는 측면에서는 중요한 기념일임이 확실하다. 또한 평소에는 잊고 지내던 친척들과 모처럼 안부를 주고 받거나 그 시절 추석풍경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향수에 푹 젖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느 핸가 엄마는 추석빔으로 언니와 나와 동생의 바지를 편물점에 부탁해 똑 같은 파란색으로 맞추어 입혔다. 여기엔 같은 색 실을 한 뭉치 싸게 사서 사이즈만 다르게 만들어서  계속 물려 입히려는 엄마의 계산이 들어가 있었는데, 암튼 그 시절에 우리집은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이나 되어서야 새 옷을 얻어 입을 수 있었다. 그리고 추석 전날 우리는 순천에서 좀 떨어진 용수동이란 곳에 사는 큰아버지댁으로 차례를 드리러 갔다. 엄마는 머리위에  음식이 담긴 국석을 이고, 우리는 불빛도 별로 없는 시골길을 환한 달빛에 의지해 따라 갔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일은 귀신처럼 우물가 옆에 서 있던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의 모습과 황하의 소용돌이처럼 크게 들렸던 냇가의 물소리, 자꾸 출렁출렁 우리를 따라 다닌듯한 보름달이었다. 걷기가 지루해 질때면  나는 눈을 감고 걸으며  송림이 보이냐고 엄마에게 자주 물었는데, 왜냐면 그곳에  도달하면 큰댁에 거진 온 거나 마찬가지 였기 때문이다. 큰댁이 가까워오면 저 멀리에서 할머니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럴 때면 우리는  먼저 가서 안기려고 기를 쓰고 달려 갔었다. 큰댁의 방안엔 송편을 빚고, 전을 부치고, 밤을 치는 등 차례상 준비로 분주하고 , 우리들은 갖가지 음식을 맛보며, 밤이 늦도록 어른들이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들을 듣다가 잠이 들곤 했다.  다음날이면 큰댁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인사를 하고, 이웃들의 각기 다른 송편 맛도 보고 , 햇밤을 주으러 가 밤가시에 찔려보면서 밤의 부드러운 맛이 그냥 나온게 아님을 깨닫기도 하면서 추석명절을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즘의 추석풍경은 많이 달라진 듯 하다. 아직도 전통을 고수하며 명절을 쇠는 가정이 대다수 이긴 하지만,  세대교체가 시작되면서, 예전처럼 의무적으로  시댁엘 가서 차례상을 준비하는 젊은 며느리들의 모습은 많이 사라지고, 간단하게 성묘만 가거나 , 쉬는 것으로 추석연휴를 보내는 게 대세라고 한다. 심지어 시어머니가 명절음식 준비를 다 해놓고, 오라고 해도 거절하는 아들, 며느리가 많다고 하니,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에 비해 이곳의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는 더 전통적인 느낌이 든다. 3억이 넘는 미국인구가 장거리를 마다 않고, 가장 들썩이는 명절이기 때문이다. 홈리스나 음식을 준비할 수 없는 가정을 제외하곤 미국가정들이 선물이나 식비에 가장 많은 돈을 쓰는 날들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며, 간만에 서로의 소식을 주고 받을 뿐인데,  살면서 이런 시간은  꼭 필요하다고 한다. 가족공동체 일원으로서 정체성을 확인하고, 단합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게 돼,  한 해를 살아갈 삶의 원동력을 얻기 때문이란다.  유달리 큰 올해의 슈퍼 문,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해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문가칼럼 목록
    Early Application은 많은 학생들에게 합격의 기회를 더 높여주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얼리 지원을 추천하는 4가지 이유를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확률통계에 따르면, Early Decision / Early Action 라운드에 지원함으로써 합격 확…
    라디오칼럼 2024-11-13 
    결과가 말해주는 명문대 입시 전문 버클리 아카데미 원장 www.Berkeley2Academy.com 문의 : [email protected]내신 성적 관리 비법 Top 3 공개! 전교 1등부터 전교 바닥까지 다양한 학생들의 대학 입시 카운슬링을 15년 넘게 해오면…
    교육상담 2024-11-08 
    박운서 CPA는 회계 / 세무전문가이고 관련한 질의는 214-366-3413으로 가능하다.  Email : [email protected] Old Denton Rd. #508Carrollton, TX 75007초박빙의 이곳 미국 대통령선거가 본 컬럼이 지면으로…
    세무회계 2024-11-08 
    오종찬(작곡가, 달라스 한국문화원장)미국의 국립공원 중에 가장 많이 사람이 찾는 곳은 어디일까?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최고의 국립공원이라 하면 그랜드 캐년, 요세미티, 옐로스톤 등을 생각하게 되는데 미국의 방송사인 PBS에서 선정한 결과 다른 모든 국립공원을 제치고 1…
    문화 2024-11-08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세상에 없던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창의성, 인생의 역경 중에서도 가능성을 발견하는 긍정성은 모두 생각에서 비롯된다.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이 극명하게 달라지기도 한다. 누구나 아는 사…
    부동산 2024-11-08 
    칼럼니스트 고대진◈ 제주 출신◈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에세이집 <순…
    문화 2024-11-08 
    Hmart 이주용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아침식사 대용이나 어린이들의 간식으로 안성 맞춤인 두유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두유는 ‘물에 불린 콩을 갈아, 물을 붓고 끓인 뒤 걸러서 만든 우유와 같은 액체’를 의미합니다. 두유의 역사를 살펴보면 동안/후…
    문화 2024-11-01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지난 달에 있었던 해외 풀꽃 시인상 시상식엘 다녀왔다. 개인적으로 시 보다는 소설과 수필을 주로 써왔는데 틈틈히 쓴 시로 수상을 하게 되어 더욱 기뻤는데, 어쨌든 난 시를 무척 좋아하고 시를 계속  써왔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
    문화 2024-11-01 
    공인 회계사 서윤교세금과 관련해서 상상외로 많은 분들이 여러 가지 잘못된 상식을 갖고 있는데 오늘은 그중 대표적인 5가지만 소개하기로 한다. 1. 학생과 군인은 세금을 내지 않고 보고하지도 않아도 된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학생이나 군인은 할인 …
    세무회계 2024-11-01 
    상업용 투자 전문가 에드워드 최 ‘생각’이 중요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세상에 없던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창의성, 인생의 역경 중에서도 가능성을 발견하는 긍정성은 모두 생각에서 비롯된다.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이 극명하게 달…
    부동산 2024-11-01 
    오종찬(작곡가, 달라스 한국문화원장)계절에 따라 변신하는 스모키 마운틴의 모습은 아침 새벽 길에 자욱하게 내린 운무의 화려한 자태에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듯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테네시 주의 케틀린버그(Gatlinburg)를 출발하여 스모키 마운틴 자락을 관통하는 …
    문화 2024-11-01 
    유익한 비지니스 신용보험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한인 사업가들에게 비지니스 신용보험(Business Credit Insurance)을 알고 있는지를 묻는다면 10명에 9명은 잘 모른다고 대답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비지니스 신용보험은 현재 신용사회가 정착된 미국, 유럽, …
    보험 2024-11-01 
    재정보험 전문 에이전트 주보윤"서부의 아이비"라고도 불리는 스탠포드 대학교의 초기 설립 자금이 한 사람의 사망 보험금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레이몬드 스탠포드와 그의 아내 제인은 아들 레일랜드 스탠포드 주니어가 1884년에 사망한 후, …
    보험 2024-11-01 
    공학박사 박우람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미국 Johns Hopkins 대학 기계공학 박사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재미한인과학기술다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확률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도박에서 돈을 따는 보장된 방법은 없다. 오히려 돈…
    문화 2024-10-25 
    박운서 CPA는 회계 / 세무전문가이고 관련한 질의는 214-366-3413으로 가능하다.  Email : [email protected] Old Denton Rd. #508Carrollton, TX 75007한낮은 아직 덥지만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가을의 정…
    세무회계 2024-10-25 

검색